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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노의 집, 이야기'를 읽고

작성자 사진: 민효 류민효 류

내가 어떤 미(美)를 추구하는지, 내가 추구하는 그 멋은 어디서 왔는지에 대해 알게 해준 책이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 어떤 것들을 표현해 나가야 할 지 방향을 제시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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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자신의 뿌리를 드러내는 작업입니다. 나는 충난 홍성 사람입니다." - 이응노, 1988년.

: 뿌리란, 고향, 선조로 표현될 수도 있으나, 나로선 나라는 개인을 이루는 것의 뿌리, 즉, 내 이성과 무의식, 감정을 의미하는 단어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선생이 작품으로 표출한 인류 평화와 화해의 염원을 되새기는 곳이고자 합니다.

: 나 또한 사람들의 조금 더 나은 순간을, 그림을 통해 이루고 싶다.


"나는 남몰래 가벼운 마음으로 줄곧 그리고 또 그렸다. 땅 위에, 담벼락에, 눈 위에, 검게 그을린 내 살갗에 ... 손가락으로, 나뭇가지로 혹은 조약돌로 ... 그러면서 나는 외로움을 잊었다."

: 그림에 대한 엄청난 의지다. 나중에 종이 살 돈이 없으면 흙바닥에 나뭇가지라도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고암 선생님은 이미 그러셨다. 물론 나도 어렸을 적에 그랬겠지.


아니 사실은 모든 사람에게 고향이라는 존재는 여러 모로 큰 의미를 갖는다. 많은 경우에 삶의 길을 나서는 최초의 출발 지점으로서 원초적이고 궁극적인 에너지가 되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 그것은 오히려 떨쳐버려야 할 무엇이기도 하다. 고향은 아늑한 엄마 품만 같아서 늘 그립고 돌아가고 싶은 곳이기도 하지만, 누구에겐가는 결코 떠올리거나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일 수도 있다. 예술가로서 인생을 살아가는 어느 순간에도 그는 고향을 잊지 못했다.

: 나도 '기장'이라는 동네에 대해 양가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묘사하는 바와 거의 유사한 것들을 가지고 있다.


꿈은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는가. 그러한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다른 장소, 다른 조건, 환경, 다른 제도들이 필요했던 것. 자기 꿈과 고향 사이에 선 소년은 동구 밖으로 내달아 저 먼 어느 곳인가로 시선을 아득하게 던질 수 밖에.

: 나도 내 꿈을 위해 부산에서 400km 떨어진 서울에 와있다. 다른 장소, 다른 조건, 환경, 다른 자극들이 필요했다. 나는 그렇게 소년에서 청년이 되어 간다.


세상과 자기 삶의 관계에 대한 자의식과 정체성이 움트려고 꼼지락거리는 시점에 이르러 그는 '가출'을 결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나는 적극적인 자의는 아니었다. 그저 대학 공부를 서울에서 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때가 내 자신과 세상에 대한 삶의 자의식과 정체성이 피어나고 있던 시기임에는 틀림이 없다.


잠의 상태로부터 깸의 상태로. 예술가로서 스스로를 한 군데에 못 박지 못하는 체질을 특히나 이응노는 타고났던 것.

: 비몽사몽 간에 잠에서 깨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얼마나 많은 늪에 젖어있었나. 돌고 돌아 왔고, 고민에 고민을 거쳐 완료에 완료를, 결정에 결정을 거듭해 왔다.


문을 나서야 마음이 번듯해지는 몸바탕을 그는 지녔던 것.

: 나도 서울에서의 삶과 부산에서의 삶이 다르다. 한쪽은 성장과 발전의 삶이고, 다른 한쪽은 평온과 포근함의 삶이다. 현실의 삶과 몽환 속의 삶 같다.


이성적 사유와 말잔치를 내세우는 이른바 '모더니스트'가 아니라, 동물적 몸씀과 비릿한 육체적 감각에 따라 춤추는 자.

: 나는 '모더니스트'에 좀 더 가까운 그림쟁이 같다. 이성적 사유를 바탕으로 시작해서, 그것을 옮겨내는 단계에서는 육체적 감각을 따라 움직인다.


"나는 결혼같은 것에는 흥미가 없었고, 그보다 내 자신의 인생에 관한 것을 차츰 생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 간호사 막바지에 나에게 했던 질문에 내가 했던 대답.


"그런 모습이 부러워서가 아니라, 나는 이대로 있어도 좋은 것인가를 수없이 자문하게 되었지요."

: 결정을 하고, 인생을 뒤엎고 나서, 내가 나에게 했던 질문이다. 고암 선생이 자문했던 내용과는 조금 다른 상황과 내용이지만, 질문의 내용은 같다. 나는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가.


"그리고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나의 새 인생을 개척하기 위해 경성으로 가기로 결심을 했답니다. 화가가 되겠다고요."

: 나도 이 과정을 겪었다. 방향을 완전히 꺾어버렸다. 화가가 되겠다고.


자, 떠나고 보는 것이다. 손에 쥔 것 아무것도 없이, 그야말로 혈혈단신 외돌토리로, 장래를 보장할 만한 아무 밑거름이나 터무니도 없이, 무작정 걸음을 떼어 옮기고 보는 것이다. 그 지점에서 그를 이끄는 것은 오직 알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 오리무중의 미래뿐이었다.

: 내가 간호사를 그만 둘 때, 손에는 여태 모은 돈과 여태 그림을 그려왔던 크레용뿐이었다. 내 미래는 정말로 보이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 앞으로 가는 게 맞다는 건 알 것 같다.


<조선미전>에 해마다 출품은 했지만 여섯 해를 내리 낙선하였다.

: 고암 선생님도 입선 후 6년 간 재입선하지 못했다. 고수들도 시행착오를 겪는다.


아뿔사! 내가 여태 '대나무'를 그려 온 게 아니라, 대나무 '그림을' 베껴 오고 있었구나! 그림을 보고 그림 그리기로부터, 대나무를 보고 그림 그리기로, 바뀌지 않겠는가. 말 그대로 관례를 따른 것이지 작가 자신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었다. 당대 즉 '현재'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 그림들에는 작가가 몸소 겼은 세계에 관한 그 어떤 실마리도 들어 있지 않다.

: 배우고 -> 모방하고 -> 모방하다 -> 자신의 것을 넣는다.


그의 앞에 놓인 것은 무엇이었을까. 도시. 전원이 아니라, 그의 육신을 도시가 둘러싸고 있었던 것.

: 자기 자신을 담아내고, 표현하기 위해선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옛것은 비실거리고 새것이 떵떵거리는 형국. '시대 정신'은 결여된 예술이라고 비판하고 있었다.

"시대 정신은 회화뿐 아니라 모든 예술의 피요 살이요 향기이며 색이다." - 변영로, 1920년 7월 7일자.

: 예술은 결국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 정도나 그 틀에서의 차이는 있겠으나, 그런 것들이 '시대 정신'이라 불리는 '지금'을 반영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대체 그 무엇을 '어떻게' 또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해 어떤 자각을 할 정도로 의식이 여물지는 못했다. 그것은 달리 말해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묻는' 의식일 텐데.

: 내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 그리고 무엇을 왜 그리는가에 대해 생각을 정리했던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그것은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자 답이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보는 행위의 재미와 중요성을 알게 하고자 하며, 자신에 대해 알아감으로써 스스로를 조금 더 믿고, 사랑할 수 있게 하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는 방식은 내가 추구하는 멋을 활용해서 내가 생각할 때 스스로를 조금 더 믿거나 사랑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세상을 사랑하는 데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는 대상을 선택했다.


또다시 '가출'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

: 이 가출은 데미안의 부화와 같다. 스스로를 굳히고, 적당한 때에 굳힌 것을 깨고, 이 과정을 반복하는 것. 그것이 성장의 방식인 것 같다.


서화의 문법이 일종의 언어로서 가질 수 있는 효용의 폭은 그만큼 비좁을 수밖에 없지 않았겠는가. 어떤 삶의 조건과 형식이 자기한테 걸맞은 예술 형식을 데리고 다니는 것임은 자명하다.

: 삶에는 그에 맞는 예술의 형식이 있다. 그리고 예술은 그에 맞는 삶의 형식을 데리고 다닌다. 그것은 어쩔 수가 없다. 예술이라는 것은 삶에서 자란 뾰루지와 같은 것이다.


'현재'에 몸 담고 있는 자신을 의식하게 된 것. 내가 세상을 보고 있다는 자의식이 싹튼 것.

: 무엇을 묘사한다는 것은 그것을 본다는 것이고, 무엇을 본다는 것은 보는 주체에 대한 자각을 하게 만든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와 같은 논법인 것이다. 따라서 묘사하는 행위는 자신에 대한 인지, 인식을 발전시킨다. 보는 행위도 그렇다. 그러니 나는 그 연장선 상에서 스스로를 사랑하게 된다고 믿는 것이다.


일본에서 조선으로 오가며 10년을 그렇게 '땅을' 밟았다.

: 사생이란 현실을 살아가는 것. 지금 여기에 머무르는 것.


이쯤부터면, 서화니 미술이니 하는 틀거리가 문제되지 않는다. 곤경에서나마 건강한 삶의 늪이 있고, 그것을 비켜 가지 못하는 그의 체질과 버릇이 있고, 그의 몸을 따르는 붓과 종이가 이응노에게 있을 뿐이었따. 예술이란 말이여, 하는 투의 폼 잡기가 그에게는 없다.

: 우선 폼 잡기를 조심해야 한다. 예술에 대한 본인만의 생각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누군가가 그것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는 이상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된다. 그건 예술이 아닌 것도 그렇지만. 그리고는 양식이니 주의니 재료니 하는 것들은 언제나 두 번째가 된다. 그냥 나를 담아내는 것, 내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담아내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예전에는 풍경을 정중하게 묘사하는 태도가 앞섰는데, 해방 이후에는 화가의 흥이 앞선다.

: 나는 거의 처음부터 내 흥이 앞섰다.


아주 붓놀음으로 빠지지도 않고, 대상의 상태나 성격, 분위기, 생기는 그대로 챙겨 들인다는 데에 이즈음 그림의 맛이 있다.

: 나도 이런 그림이 좋다. 형태를 너무 해치지 않고, 형태를 너무 따르지 않지만, 그것을 담아내는 것. 묘사는 그런 맛이 있어야 하는 것 같다. 그림은 역시 선, 면, 색이 이루지만 그걸로 생명력을 담아내야 한다.


사의(寫意)

: 묘사 대상의 본질이나 정수를 포착해 그림으로 옮기거나, 작가의 정신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행위. 거칠고 간략한 필치나 이러한 필치로 그리는 기법을 이르는 말로도 쓰임. '1920년대 말 동양주의 사상의 영향으로 서양 추상미술의 뿌리는 동양 전통회화.', '1950년대 전통 화가들이 서양 회화의 영향으로 수묵화를 재해석 하는 과정의 개념'


: '거친 질감 위의 사의적 표현'


: 나는 정식 배움이 없어 구상과 추상이 뒤섞이고 서양과 동양이 엉켜 노는 그 지점에 서있는 것 같다.


이응노도 전쟁 직후 몇 년은, 그렇게 바지런히 몸을 일으켜 거리를 누비며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도 술에 취해 살았다.

: 전후 시대는 생과 사의 허무한 차이로 인해 취기의 시대였던 것 같다. 김환기 선생도 이응노 선생도 술에 취해 살았다.


구상이 반추상을 건너 추상으로 내빼는 게 일견 도리일 성싶지만, 파리의 이응노에게 구상은 추상의 여백이요, 추상은 구상의 여백일 뿐이었다.

: 나에게도 그렇다. 모두에게도 그럴 수도 있다. 나는 구상을 그리다보면 추상의 것들이 쌓이고, 추상을 그리다보면 구상의 것들이 쌓인다.


1980년대에 좀 더 집중한 <군상(群像)> 연작도 1960~1970년대가, 아니 서화를 통해 처음 입문하던 시절의 사군자, 서예부터 풍경, 인물 연작과 반추상을 건너 파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이 녹아든 그림이 된다. 적어도 이응노에게서 '이전'은 '이후'에 의해 배제되거나 삭제되지 않는다. 이후는 이전을 포용하여 좀 더 큰 차원으로 끌어올려 화해한다.

: 나의 그림도 이전의 것이 이후의 것에 녹아드는 때가 있다. 물론 그러지 않을 때도 있다. 이후는 필히 이전을 바탕으로 성장한다. 점을 찍은 것이 동그라미의 형태로, 하얀 배경을 위해 하얀 점을 찍은 것이 질감을 살린 배경 구성으로 흐른다. 까만 선으로 구성을 잡던 것들은 더 큰 존재감으로 나타난다.


"선의 움직임과 공간의 설정, 새하얀 평면에 쓴 먹의 형태와 여백과의 관계, 그것은 현대 회화가 추구하고 있는 조형의 기본인 것이지요."

: 나는 대부분의 경우에 배경을 두지 않는다. 하얀 배경이 그림을 덩그러니 두고 한 편으론 돋보이게 만든다. 난 그런 그림이 좋다.


"우리 나라의 오래된 비석처럼 그 낡은 돌의 마티에르, 돌에 새겨진 문자 등 오랜 세월에 걸쳐 풍우를 견디어 온 비석들의 문자는 정말로 아름답습니다. 나는 그런 세계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 문자에 관한 테크닉을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 내가 2024년 8월 무렵에 추구하고 있는 질감은 아마도 나무 껍질이나 바위 표현 같은 곳에서 온 것 같다. 나는 그것들이 주는 힘을 좋아한다. 아무래도 그렇다.


옷가지며 이불, 솜, 비닐, 한지, 붓, 유화 물감, 캔버스, 나무토막, 통나무, 천 조각, 돌, 목판, 석고, 흙, ...,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무엇을 어떻게 그린다는 차원에서 시원하게 떠나, 모든 것과 어울려 노는 아이가 되었다.


순진하고 나약한 보통 사람들로부터 감동을 받기도 했다.

: 범인을 무시하지 말자. 나 또한 범인이고, 이 세상은 범인이 압도적으로 많은 곳이다.


정면 대항할 도리라고는 그 자신으로서 사는 수밖에는 없었을 것.

: 그냥 나 자신으로 살아가버리면, 세상은 나에 대한 통제력을 잃는다.


: 결국엔, 내가 나 자신의 삶과 나의 그림을 고귀하게 여겨야 한다. 내가 먼저 그러지 않으면, 그 누구도 그리 여기지 않을 것이다. 나의 태도로써 그림의 가치를 키워가는 것이다.


모든 고향으로부터 그는 다시 출가한 것.

: 이응노의 별세를 이렇게 표현하다니. 글 진짜 잘 쓴다.


미소는 모든 울타리에 작은 문을 내어 서로 드나들게 했다.

: 진짜 표현력 좋다. 그리고 너무 맞는 말이고, 좋은 말이다. 미소는 많은 울타리를 열 수 있는 도구다.


그 상처와 고독, 그리고 고통은 한 세기 내내 식민지 삶의 체험, 분단, 전쟁, 냉전, 독재 체제 같은 제도의 폭력에 시달리며 근근이 연명해 온 한반도 백성 모두의 것이 아닌가.

: 대한민국은 191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약 80년 간 폭력의 시대에 살았다. 그리고 그때의 어른들이 만든 세상에 지금의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 대한민국은 다시 온화한 모습을 되찾을 거라고 믿는다. 예술가는, 자신을 담을 수 밖에 없고, 시대를 담을 수 밖에 없다. 결국엔. 결국엔 철학자로서 그림쟁이가 될 수 밖에 없다. 그것이 동양 사상이지 않을까.


: 고향을 강조하는 이는 고향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고, 고향에 살지 못하는 이다. 부산에서 한 평생을 사신 우리 아버지는 부산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 하시지 않는다.


: 동양화, 한국화적 요소를 나의 표현으로 그려보자. 우선 종이에, 그 다음 캔버스에.


사실(寫實)과 사의(寫意)가 혼연일체되어 다른 말로 따질 것이 없는 살아 있는 그림이었다.

: 내가 정말 원하는 그림.


형태는 거의 반추상(半抽像)으로 해체시키고 그 이미지는 명확히 살려 내면서

: 내가 보기에 보이는대로, 내가 그리기에 그려지는대로.


따위를 따질 것 없이 있는 그대로 현대적 조형이면서 한편으로는 서정성과 이미지의 충실성을 함께 지니고 있는 그런 세계였다. 수묵화의 현대적 조형이 어떻게 가능한가의 좋은 시범을 보았다.


오늘날 깊은 침체에 빠진 한국화의 새로운 모색을 다름 아닌 고암의 예술 세계에서 찾아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중엔 그에 대한 언급없이 한국 현대 미술사를 쓸 수 없다는 생각까지 갖게 된 것이다.


1958년 중앙공보관에서 열린 <도불 개인전> 때 어떤 사람이 작품을 사고 싶다고 했으나 그것은 자신의 작품 3천 점 중에서 골라낸 30점으로, 유럽에 가서 세계의 화가들과 대결하려고 작정하고 만든 것이므로 팔지 않았다는 작가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 진짜 멋지다. 나라면 감사합니다 하고 그림을 팔았겠지? 나도 그림들을 가지고 더 큰 도전을 해보고 싶다.


"무엇 때문에 하나의 그림을 3장이나 똑같이 그렸겠는가? ... 하나의 점, 하나의 선 속에는 나의 과거가 있고 나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것일 텐데..."

: 나의 생각과 정말 같다. 같은 그림은 그릴 필요가 없다. 한 번 그리면, 그 이미지, 생각, 감정에 관한 표현 욕구가 해소되어서, 다시 그릴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고암 작품의 다양한 경향과 그 분주한 변천 과정은 결코 변덕스러운 흠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다. 그에게 변모란 작품 내적으로 필연성을 지니고 있으며, 작가 정신의 고양이라고 하는 하나의 줄기 속에서 부단히 새로운 것을 시도해 온 결과의 산물이다.

: 나의 것은 변덕스러움인가. 아니라고 명확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필연성이 없다고도 할 수 없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나는 특히 한국의 민족적인 추상화를 개척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나는 동양화에서 선(線), 한자나 한글에서의 선, 삶과 움직임에서 출발하여 공간 구성과의 조화로 나의 화풍을 발전시켰지요. 한국의 민족성은 특이합니다. 즉 소박, 깨끗, 고상하면서 세련된 율동과 기백 - 나의 민족관에서 특히 유럽을 제압하는 기백을 표현하는 것이 나의 그림입니다."

: '태극기'는 아름답다. -> 추상화다. -> 내 최근 그림과 닮았다. -> 태극기에 대해 공부해보자. 소박, 깨끗, 고상(깔끔한 선, 여백) + 세련된 율동과 기백(색감과 곡선, 활력) -> 단정, 깔끔 + 세련된 생명력


"글씨가 아닌 획과 점이 무형의 공간에서 자유자재하게 구성해 나가는 무형의 발언이다."


이 정신 상태를 서구적 표현 양식을 빌려 재생산해 낸 것이다.


이응노는 어떤 자기 권위의 책략을 부리지 않고, 우리 예술 애호가들을 주술에 걸어 넣어 함께 어울리게 한다.


그의 작품은 엄격함과 동시에 마술적이며,


고암에게 있어서 변화가 없다는 것은 곧 예술의 죽음이고 모방의 타성이 되는 것이다. 고암은 변화의 추구를 하나의 예술 정신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예술가의 사명은 새로운 가치의 창조에 있다. 새로운 가치 창조라는 것은 생(生)에 대한 진실의 창조이며, 따라서 이는 독창적일 수 밖에 없다. ... 예술가의 생의 목적도 또한 자기의 발견에서 오는 일종의 행복이다. 그것은 남에게 꼭 인정받아야만 그 가치를 발휘한다고는 생각되지 않으며 어디까지나 스스로의 행복감을 갖는 데서 그치는 것이다."

: 생은 각자의 생만이 존재한다.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더라도 생은 각자의 생으로써 존재한다. 그러니 생에 대한 창조는 자신의 발견과 자신에 대한 정립이며, 이는 독창적일 수 밖에 없다. 자기 자신이 되고 그 위에 또 자기 자신에 대한 공부를 더해, 한 인간으로서의 독창성을 개발하고, 그속에서 진정 스스로가 되는 자유를 느끼는 것. 그것은 인간으로서 누려야할 최고의 가치다.


"나에게는 권력 있는 사람보다도 약한 사람들, 모여서 살아가는 사람들, 움직이는 사람들, 일하는 사람들 쪽에 마음이 쏠리고, 그들 속에서 내가 살아가고 있음을 발견하곤 했습니다."

: 그가 그런 이들에게 마음이 쏠린 이유. 약하고, 모여 살아가고, 움직이고, 일하고 있기 때문.


"나는 화가의 무기는 그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대 예술가라면 자신의 사상과 철학을 대중의 입장에 세워야 할 것입니다."

: 내가 내 몽둥이는 그림이다라고 말한 것과 유사하지만, 고암은 그걸 지키는 몽둥이로 쓰라고 하신 것 같다. 대중을 위한 예술. 그 전에 대중을 위한 철학과 사상.


세 작가 모두 50대에 해당한다. 인생의 리듬으로 볼 때 기법이 원숙해진 단계에서 이들은 젊은 시절에 부딪쳤던 예술적 과제와 문제 의식, 즉 전통 회화를 어떻게 변모시키면서 살릴 수 있을 것인가라는 숙제를 다시 떠안은 것이었다.

: 길게 보고 가야한다. young and rich도 좋지만 계속 배우는 마음가짐으로 길게 길게 가야한다.


최고의 경지까지 끌어올리고 그것을 고비로 곧 타성에 젖어 같은 형식을 되풀이해 그리며 일생을 마쳤다.

: 가장 뺴어나다 싶을 때 조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장소를 바꾸거나, 물건을 바꾸거나, 사람을 바꿔야 한다.


더 높이 끌고 올라갈 수 있었는데 중도에 전화하고 만 것이 아니냐는 일말의 아쉬움이 없지 않다.

: 나도 지금 그리는 양식에 만족하지 말고, 마음이 시키는 한 계속해서 변해가야 한다.


예술이라는 살림살이의 역사가 어찌 사실이라는 객관성의 테두리 안에서 설명 될 수 있을까요. 개개인의 주관적 경험과 집단적 욕망의 지표가 고루 문화의 층위로 기억될 때 우리는 역사를 그나마 다층적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고암을 왜 기억하고 무엇을 후세에 전달하며 어떻게 기념해야 하는지를 계속하여 질문하지 않으면

: 고암은 한국화를, 동양화를 세계적인 무대의 관중들도 받아들일 수 있게 진화시켰다. 이는 한국의 그림쟁이들이 우리의 뿌리를 바탕으로 전세계적인 무대에서 실력을 뽐내는 것으로 이어 받을 일이다. 그것이 동양화스러운지, 한지에 그린 것인지 보다는 한국적인지가 관건인 것 같다.


한국인이라는 동양적 정체성을 중심으로 서양의 현대적 양식을 결합하였습니다.

끊임없는 도전과 실험의 정신

'변화'의 궤적

창작과 참여 그리고 활발한 연구와 기획을 통한 살아 있는 미술관을 지향해야 합니다.

: 고암 미술상 공모전 개최의 의의라고 생각한다.


'위대함 평범의 미학'. 고암이 말년에 제작한 <군상> 시리즈의 그 미학처럼.

: 군상은 100호 정도 되는 크기의 캔버스로 볼 때 그 진가가 잘 드러나는 것 같다.


이응노의 집에 이르는 길은 예술로 난 길이기 이전에,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근현대사의 질곡 위에 난 길이자, 그 속에서 우리가 모르는 사이 굴절된 삶을 살았던 한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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